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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

폭설 속에 갇힌 자의 기록

by hoayeu 2025.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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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발이 서서히 짙어지기 시작한 건 산 중턱을 넘을 무렵이었다. 주인공 강민혁은 오늘 등산이 조금 무리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느끼면서도, 이미 너무 멀리 온 탓에 발걸음을 되돌리기 어려웠다. 늘 그래왔듯이, 자신감과 판단력에 의지해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자연은 인간의 의지를 조롱하듯 점점 더 거세게 몰아쳤다. 바람은 울부짖었고, 눈은 쏟아지는 벽처럼 시야를 막았

 

다. 몇 걸음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 민혁은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젠장...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그는 핸드폰을 꺼내 날씨를 확인해보려 했지만, 이미 신호는 사라진 상태였다. 배터리도 금세 급속히 줄어들고 있었다. 민혁은 일단 근처에 있는 임시 대피소를 찾아가야겠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GPS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길을 잃는 건 시간문제였다.

첫 번째 날

산 중턱에서 겨우 바위에 몸을 기댄 민혁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가방을 뒤져 얇은 담요를 꺼냈다. 그러나 추위는 무자비했다. 기온은 급속히 떨어졌고, 그의 손발은 점점 감각을 잃어갔다.

 

희망이라는 단어가 아직은 그의 가슴에 남아있었다. 내일 아침이면 눈보라가 잦아들고 구조팀이 수색에 나설 거라고 믿었다. 그는 온몸을 웅크리고 잠을 청했다. 그러나 깊은 어둠 속에서 끊임없는 바람 소리가 그를 괴롭혔다.

두 번째 날

눈이 그칠 기미는 없었다. 민혁은 새벽녘에 깨어나 몸을 일으켰다. 그의 몸은 한층 더 무거워졌고,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에 그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그는 가방에 남은 음식물을 확인했다. 초콜릿바 두 개와 물 한 병이 전부였다.

 

"이걸로 며칠을 버텨야 한다고...?"

 

그는 중얼거리며 초콜릿 하나를 뜯어 입안에 넣었다. 단맛이 잠시 그의 정신을 깨웠지만, 곧 끝없는 고립감이 다시 밀려왔다. 그는 구조 신호를 보낼 방법을 고민했다. 눈을 파헤치고 주변에 나무를 모아 불을 피워보려 했지만, 젖어버린 나뭇가지들은 불이 붙지 않았다.

 

체력은 빠르게 고갈되어 갔고, 민혁은 다시 대피소로 돌아가 몸을 웅크렸다.

다섯 번째 날

절망은 서서히 그의 정신을 잠식했다. 눈은 멈추지 않았고, 민혁은 이미 방향 감각을 잃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도움을 청했지만, 대답은 없었다. 끝없는 침묵과 바람 소리만이 그의 외침을 삼켰다.

물은 이미 바닥났고, 그는 눈을 녹여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나 허기와 추위는 점점 그의 의지를 갉아먹었다. 환각이 시작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그는 자신의 앞에 가족과 친구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민혁아... 조금만 더 버텨. 구조대가 곧 올 거야."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는 그것이 환상임을 알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흐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열 번째 날

민혁의 몸은 거의 기능을 멈춘 상태였다. 동상으로 인해 손가락과 발가락은 감각이 없었고, 피부는 얼음처럼 딱딱하게 굳어갔다. 그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지막 힘을 짜내어 핸드폰을 켰지만, 배터리는 이미 완전히 소진된 상태였다.

그는 가방에서 작은 수첩과 펜을 꺼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을 적기 위해서였다.

 

"만약 이 기록을 누군가 본다면, 내 가족들에게 전해주세요. 제가 끝까지 싸웠다고.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사랑한다고..."

 

글씨는 점점 흐트러졌고, 결국 펜은 그의 손에서 떨어졌다. 눈을 감으며 그는 마지막으로 하늘을 떠올렸다. 푸르른 하늘과 따뜻한 햇볕이 그리웠다.

마지막 순간

민혁은 차가운 눈 속에 묻혀갔다. 그가 남긴 기록과 흔적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발견되었다. 구조대가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의 수첩은 눈 속에서도 간신히 보존되어 있었고, 그의 가족들에게 마지막 메시지로 전해졌다.

 

그가 남긴 기록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러나 자연은 여전히 무심하게 거대한 산으로 서 있었다. 민혁이 경험한 고통과 절망은 그저 인간이 자연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일깨워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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