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문턱이 성큼 다가온 어느 날,
작은 마을의 한적한 골목 끝자락에 위치한 오래된 주택. 그곳에 홀로 사는 이경자 할머니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할머니는 올해로 78세, 남편과 자식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 뒤 홀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자식들은 오래전에 도시로 떠났
고, 연락은 점점 뜸해지더니 이제는 생일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경자 할머니는 매일 아침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집 근처의 작은 텃밭으로 향합니다.
그녀의 하루는 텃밭에서 시작되고 텃밭에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할머니가 손수 기른 채소들은 마을 장터
에서 작은 수익을 가져다주었고, 그 돈으로 할머니는 겨우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의 하루는 단조로웠습니다.
텃밭에서 돌아오면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남은 시간은 주로 낡은 라디오를 들으며 보냈습니다.
텔레비전은 고장 난 지 오래였고, 수리비를 감당하기엔 부담스러웠습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간간이 들리는 노래가 그녀의 외로운 삶에 작은 위로가 되어주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할머니를 걱정했지만, 바쁜 생활 속에서 직접 찾아가 말을 걸거나 도울 여유를 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매주 수요일, 할머니의 집에는 특별한 손님이 찾아옵니다.
마을 복지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대학생 민지였습니다. 민지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가끔은 마트에서 사온 물
건으로 냉장고를 채워주기도 했습니다. 할머니는 민지를 볼 때마다 밝은 미소를 지으며 반겨주었고,
민지가 돌아간 뒤에는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느 날,
민지가 할머니의 집에 도착했을 때 할머니는 평소와 달리 무언가 근심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민지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오래된 상자 하나를 꺼내놓았습니다.
상자 안에는 먼지 쌓인 사진들이 가득했습니다.
“이게 다 내 가족 사진이야. 그런데 요즘은 이 사진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무거워져.
이 아이들이 이제는 나를 기억이나 할까 싶어서 말이야.”
할머니의 말에 민지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날 이후 민지는 복지센터에 요청해 ‘가족 연결 프로그램’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가족들을 찾아주는 활동이었는데,
할머니가 혹시 자식들과 다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돕고 싶었던 것입니다.
민지는 여러 기관에 연락하며 할머니의 가족들을 수소문했고, 드디어 몇 주 뒤 반가운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장남이 아직 같은 도시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민지는 그 소식을 할머니에게 전하며 조심스럽게 장남에게 연락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망설였지만, 민지의 설득에 용기를 내어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누른
할머니의 목소리는 애틋함과 그리움으로 가득 찼습니다.
“너무 오래돼서 내가 전화하면 싫어하지 않을까 싶었어. 하지만… 너희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구나.”
할머니의 목소리 너머로 들려온 장남의 대답은 예상 밖의 반가움이었습니다.
“어머니! 정말 오랜만이에요. 저도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
그 전화 이후로 할머니와 장남은 자주 통화를 하게 되었고, 몇 주 뒤에는 손자,
손녀들과 함께 할머니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오랜만에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 할머니의 집은 웃음과 이야기로 가득 찼습니다.
할머니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손자, 손녀들은 할머니가 들려주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으며 즐거워했고,
장남은 할머니와 함께 텃밭에서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쌓았습니다.
이후로도 할머니의 일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마음은 달라졌습니다. 가족의 따뜻한
존재가 다시 그녀의 곁으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민지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한 일이 얼마나 큰 보람으로
돌아오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연결의 다리가 되어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경자 할머니의 이야기는 작은 관심과 배려가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녀의 외로웠던 일상에 따뜻한 온기가 스며든 것처럼, 세상의 많은 독거 노인들에게도 이런 희망의 손길이 닿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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