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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

봄바람이 지나간 자리

by hoayeu 2025.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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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 도시의 거리는 여전히 겨울의 잔상에 젖어 있었다. 회색빛 건물들 사이로 부드러운 봄바람이 살며시 불어오며 사람들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그때, 한 청년이 조용히 그 바람을 느끼며 서 있었다. 그의 이름은 지후였다.

지후는 평범한 회사원이었지만, 그의 마음은 늘 어딘가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따스한 햇살과 부드러운 봄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면 유난히 과거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 기억 속에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서연이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도 봄이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벚꽃이 하늘에서 흩날리던 날, 지후는 카페 앞에서 책을 읽고 있던 서연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부드러운 봄바람에 흩날렸고, 그 순간부터 지후는 자신의 삶에 작은 변화가 찾아올 것을 직감했다.

사랑은 그렇게 조용히 다가왔다.

두 사람은 빠르게 가까워졌다. 따뜻한 봄바람이 그들의 만남을 축복하듯 감싸 안았다. 매일 저녁, 벚꽃이 흐드러지는 공원을 산책하며 지후는 서연의 손을 꼭 잡았다. 서연의 웃음소리는 봄바람에 실려 지후의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이렇게 좋은 날씨엔 꼭 산책해야 해. 봄바람이 우리를 위해 부는 것 같아."

 

서연의 말에 지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녀와 함께라면 어떤 바람도 따뜻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하지만 모든 사랑이 영원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의 관계에 작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바쁜 일상, 쌓여가는 오해,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둘 사이의 틈을 벌려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서연은 지후에게 조용히 말했다.

 

"우리... 잠시 떨어져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그 말이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 따뜻했던 봄바람이 갑자기 차갑게 느껴졌다. 그렇게, 두 사람의 이별은 시작되었다.

지후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녀의 흔적을 잊지 못했다. 매년 봄이 오면 서연과 함께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봄바람이 불어올 때면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사랑했던 사람의 기억은 계절이 바뀌어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잘 지내고 있을까..."

 

 

그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파란 하늘 위로 흩날리는 벚꽃잎이 그의 마음을 다시 한번 흔들었다. 마치 그때처럼, 서연과의 마지막 순간이 다시 떠올랐다.

몇 년이 흘렀다. 지후는 여전히 같은 거리를 걷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이전과 달랐다. 상처는 조금씩 아물었고, 새로운 삶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자주 가던 공원에서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지후야...?"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서연이 서 있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여전히 부드러운 봄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시간은 멈춘 듯했다.

서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랜만이야."

 

지후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차가웠던 이별의 기억이 따뜻한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이 재회는 예상치 못한 선물처럼 다가왔다.

 

그들은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만났지만, 예전과 같은 사랑은 아니었다. 대신, 서로의 삶을 응원할 수 있는 새로운 관계가 되었다. 이별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깨달았다. 이 새로운 재회는 서로에게 치유의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날, 공원에는 여전히 봄바람이 불고 있었다. 과거의 아픔도, 사랑도, 이별도 모두 그 바람에 실려 어디론가 흩어졌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 봄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새로운 희망이 피어나고 있었다. 이 재회는 그 희망의 첫걸음이었다.

 

지후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의 손끝을 스치는 봄바람은 여전히 따뜻했고, 가끔은 서연과의 추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았다. 사랑도, 이별도, 그리고 그들의 재회도 모두 그의 삶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또 다른 누군가가, 같은 봄바람을 맞으며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재회도 언젠가 이 바람 속에서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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